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프레드 노벨 (문단 편집) == 기타 == * 노벨은 [[스웨덴인]]이었지만 정작 일생 동안 스웨덴에서 산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갔으며 이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부유해지자 [[독일 제국]], [[스코틀랜드]],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이탈리아 왕국]] 등지에 집을 구해 돌아가면서 살았다. [[빅토르 위고]]는 노벨을 "백만 달러를 가진 방랑자"라고 불렀을 정도. 다만 노벨의 공장은 에밀의 죽음 이후 스웨덴에서 재건되었고 이후 [[독일인]]의 투자로 독일로 옮겨가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다이너마이트 발명에 밀려 잘 안 알려져 있지만, 그의 회사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근무 여건들을 생각할 때 매우 파격적으로 직원들의 급여와 복지 수준이 높았다. 말단 사원이나 공장 막노동자조차 다치게 되면 의무실로 가서 의사에게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을 정도였다. 참고로 이는 노벨 가 형제들 모두가 다 똑같았다. 우선, 알프레드 노벨의 큰 형인 로베르트 노벨은 본래 총기제작자였다가,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하는 도중에 망해가던 [[석유]] 회사 한 곳을 견학하던 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석유 산업에 뛰어들은 바 있다. 문제는 석유의 수송을 위해 송유관을 설치하자, 기존에 석유 배럴을 실어나르는 업무를 하던 마차의 마부들이 실직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바람에 송유관에 대한 [[사보타주]] 시도까지 일어나는 등의 마찰이 있었는데, 로베르트는 이렇게 일어난 노사 갈등을 [[대인배|실직자 신세가 된 마부들 전원을 송유관을 경비하는 용역으로 재고용하는 것으로 원만하게 해결했다]]. 그리고 고용 조건을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는데 노력하다가 병으로 쓰려진 바람에 회사를 그의 큰 남동생이자, 노벨 형제의 둘째인 루드비그 노벨에게 물려줬다. 루드비그는 직원들의 급여를 인상함은 물론, 주말을 보장해주고 직원용 기숙사를 설립하였으며, 직원들을 위한 테니스장을 설치하였으며, 심지어는 회사가 있는 러시아 제국령 아제르바이잔 바쿠 현의 혹독한 기후로 인해 건강을 해친 형의 선례를 생각해서 회사 곳곳에 [[나무]]를 심는 등, 직원들에 대한 복지를 크게 증진시켰다. 그야말로 [[난형난제]]인 셈이다. 참고로 루드비그 노벨은 우리가 아는 [[유조선]]을 처음 구상하고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다. * 그는 심장병이 있어서 [[니트로글리세린]]을 약으로 먹었는데 현대 의학에서도 협심증 및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사용한다.[[https://blog.naver.com/krictblog/10098050857|#]] [[분류:스웨덴의 기업인]][[분류:스웨덴의 화학자]][[분류:스웨덴의 발명가]][[분류:1833년 출생]][[분류:1896년 사망]][[분류:노벨상]][[분류:스웨덴의 무종교인]][[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인물]][[분류:스톡홀름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